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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법

진술거부권과 비자백 간접 증거 인정 한계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말하면 그들은 기록했고,
기록된 말은 내게 불리한 무기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결국 침묵하는 게 나를 지키는 길이라 믿었다.

진술거부권.
변호인이 처음 나에게 설명했을 땐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권리”라는 말이 낯설게 들렸다.
하지만 수사실에 앉아 처음 ‘진술을 거부하겠습니다’라고 말한 순간,
나는 모든 시선이 나를 유죄로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 침묵이 오히려 죄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조사관은 내게 말했다.
“말 안 하면 나중에 더 불리할 수 있어요.”
그 말은 정중했지만, 사실상 위협이었다.
그는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했고,
나는 그가 말하길 바라는 대답만을 듣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는 내 주변인들의 진술, 문자 내역, 통화 패턴, CCTV 등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내게 유도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 모든 것들은 마치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나의 죄를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은 나의 침묵을 뚫고, 그들은 판단을 시작했다.

 

진술거부권과 비자백 간접 증거 인정 한계

 

재판에서 검찰은 말한다.
“피고인은 수사 단계에서부터 진술을 회피했고,
대신 관련인 진술, 영상, 통화내역 등으로 범행 사실이 확인됩니다.”
나는 분명히 진술거부권을 행사했지만,
그 결과로 마치 피고인이 말은 안 했지만, 죄를 인정한 듯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게 가능할까?

법적으로는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헌법 제12조 제2항과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은
그 권리를 명확히 보장한다.
하지만 비자백 간접 증거들,
즉 주변인의 말, 전자기록, 정황자료들이
하나로 뭉쳐져서 나를 ‘말없이 유죄가 된 피고인’으로 만들었다.


진술거부권은 방어권의 핵심이다.
하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는 순간
피고인은 가장 위험한 외줄을 걷게 된다.

내가 겪은 경험을 통해 말하자면,
진술거부는 준비 없이 행사해서는 안 되는 칼이다.
변호인 조력을 충분히 받고,
간접 증거의 수집 여부, 주변 진술자의 입장,
모든 구조를 예측한 후에야
진술거부는 제대로 된 방패가 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도,
그 침묵이 나를 위해 말하게 하려면
그 침묵의 준비는 말보다 더 치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