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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법

공소장 일본주의와 실질적 피고인 방어권 침해 사례 분석

공소장 일본주의, 피고인을 위한 제도일까?

“당신이 뭘 잘못했는지, 판결 전에 미리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당연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늘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방어권은 헌법적 권리다.
그런데 그 출발점이 되는 공소장이,
실제로는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구조를 지닌 경우가 있다.

형사소송법은 공소장 일본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공소장 일본주의란 공소장에 수사기록이나 판결 관련 의견을 포함하지 않고, 오직 공소사실만 적는 것을 말한다.
즉, 판사는 공소장을 처음 받을 때 검찰의 주장 외 그 어떤 자료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심리를 시작해야 한다.
이 제도는 원래 재판부가 예단 없이 공정하게 사건을 시작하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 제도가 피고인의 방어권을 오히려 제한하거나, 내용상 왜곡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공소장 일본주의와 실질적 피고인 방어권 침해 사례 분석

제도의 원칙과 현실의 괴리

이론적으로는 공소장 일본주의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제도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만으로 사건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은 자의적으로 공소사실을 정리한다.
이 과정에서 피고인의 불리한 사실은 강조되고,
유리한 정황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예컨대, 같은 사건이라도
검찰이 특정한 표현을 사용해 고의성을 강조하거나 범의를 암시하는 식으로 서술하면
재판부는 초기 인식부터 피고인을 불리하게 바라보게 된다.
공소장만으로는 피고인의 구체적인 변명, 사정, 사건의 전체 맥락을 전혀 전달하지 못한다.

또한 법원은 공소장 외에 판례상 허용된 최소한의 예외 범위를 넘어
수사기록 일부를 사전에 열람하거나,
판결문 요약서를 미리 받아보는 식으로
사실상 일본주의가 흐트러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실제 사례: 방어권 침해의 구조적 문제

2023년 서울중앙지법의 한 형사사건.
피고인은 특수폭행 혐의로 기소됐고,
공소장에는 “흉기를 들고 위협했다”는 핵심 문장이 기재돼 있었다.
하지만 피고인은 흉기를 꺼낸 적도 없었고,
단지 피해자가 먼저 위협해오는 상황에서 방어적인 제스처를 취했을 뿐이었다.
당시 CCTV와 목격자 진술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황을 뒷받침했지만,
공소장에는 이런 내용이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공판 초기에 공소장을 중심으로 사건을 이해했고,
첫 2차례 공판에서 피고인의 증언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변호인이 CCTV 기록을 제출하고,
목격자 2인의 진술서를 추가로 제출한 뒤에야
재판부는 공소사실의 과장 가능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무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피고인은 4개월간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했다.
그 시간 동안 생계는 무너졌고, 직장은 해고됐다.

이 사례는 공소장 일본주의가
제대로 지켜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피고인의 방어권에 심각한 한계를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제도적 완성은 운용 방식에서 판가름난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그 의도만큼은 명확하다.
그러나 제도의 실질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
공소장만으로 피고인의 혐의를 판단한다면
법원은 오히려 더 좁은 시야로 사건을 바라볼 위험이 크다.

따라서

  • 공소장 작성 단계에서의 중립성 가이드라인 강화,
  • 피고인 측 의견을 사전에 요약한 ‘방어요지서’ 제출 허용,
  • 초기 공판에서 상호 증거제출 기회 보장 같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공정한 재판은 공정한 시작에서 출발한다.
공소장이 아무리 중립적이라 해도,
정보의 편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방어권은 이론일 뿐, 현실이 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