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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법

형사보상 청구 시 무죄판결 요건과 사실오인 구별

“무죄면 형사보상 받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무죄는 죄가 없다는 선언인데
그동안 구속되었거나 재판을 받은 것에 대해
당연히 국가가 보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는
겉으로 보기엔 너무도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 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형사보상법은 무죄를 받은 사람에게 일정 조건 아래
보상을 인정하고 있지만,
모든 무죄 판결이 보상을 가능케 하는 건 아니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무죄의 성격”**이다.
그 무죄가 진짜 무죄(사실무죄)인지,
아니면 **증거 부족으로 인한 무죄(의심무죄)**인지가
실무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일부 법조인은 주장한다.
“형사보상의 핵심은 무죄 그 자체가 아니라,
국가가 잘못 기소했고, 법원이 잘못 판단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이 논리는 매우 보수적인 시각이다.
즉, 무죄가 나왔더라도
검찰이 충분한 근거로 기소했으며
법원이 신중하게 재판을 진행했다면
결과적으로 무죄가 나왔어도 책임은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해선
많은 인권 전문가들이 반론을 제기한다.
“형사보상은 ‘책임 추궁’이 아니라 ‘피해 회복’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무죄를 받은 사람이 구속되고 재판을 받는 동안
잃어버린 시간, 일터, 가족 관계, 사회적 평판은
어느 누구도 회복시켜 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상은 국가 책임이 아닌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형사보상 청구 시 무죄판결 요건과 사실오인 구별

 

실제로 법원은
무죄라고 해서 무조건 보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사실오인에 의한 무죄’다.
이는 “피고인이 실제로는 유죄일 수도 있지만,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증명력이 부족해 무죄가 선고된 경우”를 뜻한다.
이런 경우엔
법원이 ‘공정하게 판단은 했지만 결과가 무죄일 뿐’이라고 보아
형사보상을 기각하는 판결도 상당히 존재한다.

2022년 서울남부지법의 한 사례에서는
보이스피싱 공범으로 구속되었다가 무죄를 받은 20대 남성이
형사보상을 청구했지만
“혐의가 명확히 부정된 게 아니라 증거 부족으로 무죄가 인정된 것”이라며
보상이 일부만 인정되었다.
이 사례는 무죄의 성격이 **“사실 무죄인지, 판단 유예 무죄인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런 현실을 마주할 때,
우리가 다시 질문해야 할 것은
‘보상의 기준’이 아니라 **‘보상의 철학’**이다.
형사보상은
국가가 실수했느냐를 따지는 절차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희생된 사람에게 사회가 어떤 책임을 지느냐”**를 묻는 절차여야 한다.

무죄는 단지 법적 판단이 아니라,
어떤 이에게는 인생의 복원 기회다.
사실오인이든, 입증실패든 간에
국가는 한 사람을 죄인 취급했고,
그 시간 동안 그는 구속 상태에서 싸웠다.
그 고통을 단순히 ‘사실 무죄냐 아니냐’로 구분하는 건
현대 형사사법이 품어야 할 깊이에 미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