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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법

공판준비절차 중 검찰 측 증거목록 누락 시 피고인 대응 전략

공판준비절차에서 검찰이 제출하지 않은 증거,

피고인은 어떻게 방어할 수 있을까?

형사재판은 정식 공판이 시작되기 전,
공판준비기일이라는 사전 정리 절차를 통해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시간을 갖는다.
검찰과 피고인은 이 단계에서
각자의 증거와 쟁점을 정리하고,
무엇을 다툴지, 어떤 증거를 사용할지를 미리 공유한다.

그런데 실제 재판에서는
공판준비기일 때 검찰이 제출하지 않았던 증거가
갑작스럽게 본 재판 중 제출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이는 단순 실수가 아니라,
피고인의 방어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문제이며,
형사소송의 기본 원칙인 공정한 절차(due process) 자체를 흔들 수 있다.
이 글은 그러한 상황에서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취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응책과
법적으로 쟁점이 되는 부분들을 정리해보려는 목적을 가진다.

 

공판준비절차 중 검찰 측 증거목록 누락 시 피고인 대응 전략

검찰이 공판준비기일에 제출하지 않은 증거를 뒤늦게 낸다면?

현행 형사소송법에는
공판준비절차가 존재하지만,
‘의무적인 증거 목록 제출 기한’은 사실상 유동적이다.
즉,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언제든지
“새롭게 확보한 증거”라는 명목으로
증거를 추가 제출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다.
▶ 피고인은 그 증거를 미리 알지 못한 채 방어 전략을 짜게 되고,
▶ 핵심 증거가 뒤늦게 제출되면,
그에 맞는 반박 증거나 알리바이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진다.

이런 상황은 피고인에게 사실상 ‘기습’에 가까운 불이익을 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증거 능력을 인정해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검찰이 "공익상 필요" 또는 "진실 발견"을 앞세우면
재판부는 그 제출 시기를 너그럽게 보는 경우도 존재한다.


실제 판례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대법원은 증거 제출 시기에 대해
“절차적 권리 침해가 명백할 경우,
그 증거는 증거능력을 부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 대법원 2017도1023 판결

“피고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다면,
해당 증거는 실체적 진실 발견의 이익보다
절차적 정당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즉, 증거 자체가 중요하더라도
피고인의 방어권 침해가 뚜렷하다면
그 증거는 법정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원칙이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재판부는
“증거 제출 시기보다는 그 진실성과 신빙성이 중요하다”고 보며
사후 제출을 허용한다.
이로 인해 동일한 상황에서도
어떤 재판부는 증거 배제,
어떤 재판부는 증거 채택이라는
극단적으로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피고인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대응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증거 부동의 선언이다.
검찰이 공판준비기일에 제출하지 않았던 증거를 뒤늦게 낼 경우,
피고인 측은 곧바로
“이 증거는 방어권 침해를 야기하는 위법 제출”이라며
법정에서 증거 부동의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

다음으로,
해당 증거로 인해 방어 전략이 무너졌거나
실질적으로 불이익이 예상된다면
재판부에 신속하게 추가 심리기일 요청 또는 반박기회 보장을 요청해야 한다.
이는 형사소송법 제318조 및 제277조의2(방어권 보장) 조항에 근거한 정당한 요구다.

또 하나의 전략은
변호인이 재판부에 '절차적 정당성 위배' 의견서 제출을 통해
재판기록에 남기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항소심에서 주요 쟁점이 될 수 있다.
즉, 피고인이 공판준비절차에 기초해 방어 전략을 수립했음에도
검찰이 예고 없이 새로운 증거를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면
그 자체가 재판의 공정성을 침해했다는 논리다.


구조의 문제, 해결은 제도적 장치에서 출발해야 한다

공판준비절차는 원래
재판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제도였지만,
현실에서는 그 취지가 무색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검찰이 '준비기일에는 일부만 제출하고,
본 재판 중 나머지를 제출하는' 관행이
실제 실무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선
증거목록 사전제출 강제제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 공판준비기일에 제출하지 않은 증거는
    ▶ '증거목록 제출 사유서'를 별도로 제출한 경우에 한해 검토 가능하도록 하고
  • 피고인이 증거목록에 대해 반론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면
    ▶ 그 증거는 자동 배제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또한 법원은
공판준비절차가 끝난 이후라도
피고인 측에서 명백히 방어권 침해를 주장하면
재판 진행을 일시 중단하고,
증거제출의 정당성과 적법성을 심리하는 별도 절차를 둘 필요도 있다.


형사절차의 ‘공정’은 시작부터 끝까지 지켜져야 한다

누군가를 유죄로 판단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 결정적인 낙인을 찍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재판, 단 한 조각의 증거도
그 절차가 ‘정당하지 않다면’
모든 것은 의미가 없어진다.

검찰의 기습적인 증거 제출은
피고인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을 주는 일이다.
우리는 형사소송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진실에 도달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