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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법

형사사건에서 법원의 증거재판주의 적용 한계와 오용 문제

문제 제기: 증거재판주의, 정말 객관적으로만 작동하는가?

형사재판은 ‘증거에 의해 판단하는 절차’라고 한다.
이 원칙을 ‘증거재판주의’라고 부른다.
하지만 실제 재판을 지켜보면,
모든 것이 증거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는다.
진술의 태도, 정황, 분위기, 감정까지도
판단의 요소로 섞여 들어가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형사법정은
증거재판주의를 얼마나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일까?
이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법적 정의: 증거재판주의란 무엇인가?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1항은 이렇게 말한다.
“형의 선고는 증거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이 있는 경우에 한다.”

즉, 유죄든 무죄든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만 법원은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증거’라는 단어의 정의다.

  • 직접증거 vs 간접증거
  • 법정 증언 vs 수사기록
  • 진술증거 vs 물적 증거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수집되었고,
어떤 절차를 거쳐 제출되었는지에 따라
‘증거로서의 능력’이 갈리게 된다.


현장의 현실: “판사는 증거가 아닌 사람을 보고 판단한다?”

실제 형사재판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건 ‘진술증거’다.
경찰 조사 당시 진술, 검찰 피의자신문, 법정 증언 등
사람이 말한 내용을 토대로 유죄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 진술의 일관성, 태도, 감정 표현 같은
‘비정형 정보’가 판단에 개입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정보는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즉, 기록에는
“그는 말끝을 흐리며 주저했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을 피했다.”
이런 것들이 들어가지 않지만,
그 장면은 판사의 뇌리에 강하게 인식된다.

이런 상황에서 ‘증거’는 형식적일 뿐,
판사의 내면적 해석이 결정적 요소가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는 증거재판주의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다.

 

형사사건에서 법원의 증거재판주의 적용 한계와 오용 문제


판례 분석: 증거중심 판단이 흔들린 사례들

  1. 2022년 서울동부지법의 모 강제추행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진술만 존재하고,
    물적 증거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법원은 진술이 ‘구체적이고 감정 표현이 자연스러웠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했다.
  2. 반대로 2023년 대전지법의 명예훼손 사건에서는
    피고인이 ‘사실 전달에 불과했다’고 주장하며
    모든 증거를 부정했지만,
    판사는 그의 ‘방어 태도’와 ‘일관되지 않은 언행’을 이유로
    증거능력이 있는 진술보다 ‘정황’을 더 믿었다.

이러한 판례는
증거보다 인상, 감정, 태도가 더 앞서는 판단이 실제로 존재함을 보여준다.


핵심 원인: 절차적 장치 부족과 기준 불명확

증거재판주의가 흔들리는 근본 원인은

  • 객관적 증거 중심주의 부족
  • 진술 증거 과잉 의존
  • 판사의 정성적 해석 개입 가능성
    이 세 가지다.

그리고 이 문제를 지탱하는 현실적 요인은

  • 사건마다 상황이 너무 다르고
  • 증거가 없을 경우라도 결론은 내려야 하기 때문에
  • “판사 스스로의 판단”이 최종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무고 사건, 피해자-피고인 1:1 진술 사건에서
심각한 오판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해결 방안: 증거의 질 중심 개혁이 필요하다

  1. 진술 증거 평가 기준의 명문화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체크리스트를 마련하여
    감정, 태도보다는 ‘내용의 논리성, 정황 일치 여부’를 기준화해야 한다.
  2. 재판 녹화 의무화 확대
    법정에서 발생한 모든 진술과 태도, 표정 등을
    녹화로 남겨
    상급심이나 재심에서도 판사의 감각이 아닌 기록 그 자체를 검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 증거 무게 중심의 양형 매트릭스 도입
    정황증거 몇 개로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 증거가 미치는 법률적 무게를 수치화하거나 등급화하여
    보다 과학적인 판결이 내려지도록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결론: 증거재판주의는 원칙이 아니라 결과여야 한다

우리는 법을 ‘문서’로 기억하지만,
재판은 ‘사람’이 만드는 과정이다.
그 안에서 증거재판주의는 종종 무너지고 흔들린다.

하지만 증거 없는 정의는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고,
사람을 말없이 짓누른다.

형사사건에서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
그 근거가 감정이 아닌
객관적인 증거 위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그것이 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당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