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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법

공소시효 정지 사유로서 ‘해외체류’ 요건의 해석 문제

1. 서론 – 해외에 있다고 해서 시효가 멈출까? 그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공소시효는 범죄가 일정 기간 동안 공소 제기 없이 지나면
국가가 더 이상 형벌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시간적 한계 장치다.
이는 사법의 안정성과 피의자의 신뢰보호를 위한 핵심적인 원칙 중 하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해외에 체류 중인 상태라면?
그 기간 동안 국내 수사기관의 접근이 제한되므로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까?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은

“피의자가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은 공소시효에 산입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즉, 피의자가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은 공소시효가 멈춘다는 의미다.

하지만 여기서 진짜 문제는
“해외에 있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 단순한 여행도 해당할까?
  • 체류 기간이 짧아도 정지될까?
  • 일시 출국 후 곧 귀국했어도 시효 정지가 인정될까?

이처럼 해외체류가 공소시효 정지 요건으로 인정되기 위한 기준과 범위
실무상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쟁점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 문제를 중심으로
관련 법 해석, 판례, 실무상의 판단기준, 그리고 쟁점사항을 낱낱이 파헤쳐본다.


2. 형사소송법상 공소시효 정지와 해외체류 조항의 의미

공소시효는 범죄 발생일로부터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제도다.
이 제도는 피의자의 권리 보장, 사법의 효율성, 사건의 공정한 처리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예외가 존재한다.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은
피의자가 “국외에 있는 기간”은 공소시효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의 입법 취지는
▶ 수사기관이 해외에 있는 피의자에게
 사법적으로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 그 기간만큼은 시효가 정지된다고 보아
 형사처벌이 불가능해지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규정이 너무 넓게 해석되면
단순 여행이나 출장, 치료 목적의 출국 등도 모두 시효정지로 연결되어
피의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결국 핵심은
“국외에 있다”는 것이 어떤 경우를 포함하고, 어떤 경우는 포함하지 않는가에 있다.


3. 판례를 통해 본 ‘해외체류’ 인정 기준

우리 대법원은 공소시효 정지 사유로서의 해외체류에 대해
다양한 판례를 통해 유형별 판단 기준을 제시해왔다.

✅ 인정된 사례

대법원 2010도13699 판결

피의자가 범죄 후 수사기관에 적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국하여 미국에서 1년 이상 체류하였고,
국내 주소지도 두지 않았던 사안
→ “출국 시점부터 체류 종료 시점까지 시효 정지 인정”

대법원 2013도14593 판결

일본에 반복적으로 출입국하며 체류했던 피의자에 대해
“실질적으로 국내에 거주하지 않고,
수사기관이 접촉할 수 없는 상태였다면
해외체류로 본다”고 판단

❌ 불인정된 사례

서울고법 2018노305 판결

피고인이 1박 2일의 해외여행을 다녀온 경우
→ “출국은 있었지만 수사 회피 목적이 아닌 단순 여행으로 판단되어
공소시효 정지로 볼 수 없다”

서울중앙지법 2020고합342 판결

출장 및 세미나 참석 목적의 단기 출국
→ “정상적인 사유로 단기간 출국한 것은
공소시효 정지 사유로 보기 어렵다”

이처럼 ‘해외에 있다’는 표현은
단순한 물리적 출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접촉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가 핵심이다.

 

공소시효 정지 사유로서 ‘해외체류’ 요건의 해석 문제

4. 실무상 쟁점 – 출입국 기록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많은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해외체류 여부를
출입국관리 기록만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시효 정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실무상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다:

출국 목적
– 단순 여행, 출장, 병원 진료, 가족방문 등
– 수사 회피 의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는 시효 정지로 보기 어려움

체류 기간
– 수일에서 수주 수준의 단기 체류는
일반적으로 공소시효 정지 사유로 인정되지 않음

국내 연락 가능성
– 국내에 가족이 있었거나,
– 변호인을 선임해 수사기관과 접촉 가능성이 있었던 경우
→ 실질적 ‘회피 상태’로 보기 어려움

거소 이전 여부
– 국내 거소를 폐지하고
– 장기체류 비자를 받아 출국한 경우는 시효 정지 인정 가능성 높음

따라서 단순히 “출국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소시효가 자동 정지되는 건 아니며,
반드시 체류의 목적과 실질적 수사 가능성 여부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5. 결론 – 시효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 회피’ 여부의 문제다

공소시효는 단순히 달력상의 시간 계산이 아니다.
그 시간 동안 국가가 피의자를 찾아 처벌할 수 있었는지,
그에 대한 책임이 국가에 있는지 피의자에 있는지에 따라
시효 정지 여부가 판단되는 것이다.

피의자가

  • 의도적으로 해외로 도피했고,
  • 장기간 연락이 되지 않았으며,
  • 수사를 회피하려는 정황이 명백하다면
    공소시효는 정지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 단순한 해외출장,
  • 치료 목적의 출국,
  • 수일간의 여행 등까지
    무조건 시효정지로 본다면
    그건 형사소송에서 피의자의 방어권과 권리보장을 침해하는 해석일 수 있다.

앞으로는
▶ 단순히 ‘출국 여부’가 아니라
▶ ‘실질적 수사 회피 여부’를 중심으로
명확한 법적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시간은 멈출 수 없지만,
형벌권의 시간은 예외적으로 멈출 수 있다.
그 예외는 언제나 명확하고 정당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