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형사소송법

피해자의 사실적시 명예훼손 진술과 진술거부권 충돌

1. 서론 – 진실을 말해도 죄가 될 수 있다면, 그 말은 어디서 멈춰야 할까?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이에요.”
많은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진술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형법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이 없더라도
‘공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면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피해자가 진짜로 있었던 사실을 말했더라도,
그 내용이 가해자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판단되면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맞물려
형사소송에서는 또 다른 권리,
즉 **진술거부권(자기부죄금지 원칙)**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주장하면서
자신도 형사처벌의 위험에 놓일 수 있는 상황에서는
진술을 거부할 수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구성요건과 피해자 진술의 위험성
  • 진술거부권과 그 적용 범위
  • 이 둘이 충돌할 때 어떻게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하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해본다.

2. 사실적시 명예훼손, 진실이어도 처벌되는 이유는?

우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거짓말이 아니니까 괜찮은 거 아니야?”
하지만 형법 제307조 제1항은 분명히 이렇게 규정한다.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사실을 적시하여
그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즉, 진실한 사실을 말했더라도
그것이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목적이었다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개인의 명예라는 가치도 헌법상 보호받기 때문이며,
특히 우리나라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문제는 여기서 피해자의 진술과 충돌이 생긴다.
성범죄, 폭력, 갑질 등
피해자가 당한 일을 말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의 실명, 직업, 구체적 상황을 이야기하면
그 자체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러한 처벌 가능성은
피해자로 하여금 진실을 말하는 데 주저하게 만들고,
결국 정당한 진술 기회가 위축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피해자의 사실적시 명예훼손 진술과 진술거부권 충돌

3. 진술거부권이란? 피해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가?

진술거부권은 헌법 제12조 제2항에 따라
모든 국민이 가지는 권리다.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이는 형사피고인은 물론이고,
수사기관이나 법정에 출석한 참고인, 피해자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특히 다음과 같은 경우,
피해자도 스스로에게 불리한 진술을 회피할 수 있다:

  • 자신이 명예훼손죄나 모욕죄의 피의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 과거 범행과 관련된 내용이 수사기관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경우
  • 거짓말탐지기, 포렌식 등 추가 수사로 인해
     본인이 입건될 수 있는 상황이 있는 경우

이 경우 피해자는
“해당 질문에 대한 진술은 거부하겠습니다”라고
명확하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즉, 피해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진술이 형사처벌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면
헌법상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다.


4. 두 권리의 충돌 – 진실을 말하고 싶은데 말하면 불이익이 온다?

이제 진짜 문제는 이 지점이다.

피해자는
▶ 자신이 당한 일을 말하고 싶다.
▶ 하지만 그 진술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 그래서 자신의 권리로 진술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건 바로
**“표현의 자유 vs 명예 보호 vs 방어권 보장”**이라는 세 권리의 충돌이다.

실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상황별 접근을 하고 있다:

✅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경우

  • 수사기관에 진술하거나,
  • 법정에서 재판의 필요에 따라 진술한 경우는
     → **‘위법성 조각사유’**가 인정되어
     형사처벌이 면제되는 경우가 많다.

즉, 공익적 목적, 피해회복 목적, 소송 절차상의 진술 등은
명예훼손 성립요건 중 ‘비방의 목적’이 없다고 보고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

❌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경우

  • SNS, 언론 인터뷰, 유튜브 폭로 등에서
     개인의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면
     → ‘공공연성’과 ‘비방의 목적’이 모두 인정되어
    실제로 명예훼손 처벌 사례가 존재한다.

즉, 진술의 ‘장소’와 ‘맥락’이
명예훼손이 되는지, 위법성이 조각되는지를 결정하는 핵심 포인트다.


5. 결론 – 말할 권리와 침묵할 권리,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말하는 것은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존엄과 회복의 표현이다.
그 진술이 처벌로 이어진다면
피해자는 법정 안에서도 입을 다물게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형사사법 시스템은
▶ 피해자의 표현이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
▶ 공익적 목적이 있는지,
▶ 다른 방법으로는 회복이 어려운 피해인지 등을
세밀하게 따져야 한다.

반대로, 피해자 스스로도
▶ 진술의 장소, 대상, 수위에 대해 신중해야 하며
▶ 필요하다면 변호인을 통해
진술이 자신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사전 조율하는 것이 필요하다.

법은 진실을 말한 사람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 진실이 명예를 다쳤다 하더라도,
그 말이 공정하고 정당한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법은 그 말에 죄를 묻지 않아야 한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침묵할 권리도 존중받는 재판.
그 사이에서 형사소송은 균형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