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 나비효과처럼 번지는 위법성, 어디까지 막아야 할까?
형사소송에서 증거는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 도구다.
하지만 아무리 진실에 가까워도, 그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되었다면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존재한다.
이 원칙은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증거 A가 위법하게 수집되었고,
그 증거 A로 인해 새로운 증거 B가 추가로 발견되었다면,
과연 그 B 증거까지도 무효로 봐야 할까?
이것이 바로 파생증거(派生證據) 의 문제다.
영어권 형사법에서는 흔히 "독극과실이 맺은 열매(fruit of the poisonous tree)"라는 비유로 설명된다.
이번 글에서는
- 위법수집증거에서 파생된 증거의 증거능력 문제를 다루며,
- 한국 형사소송법 이론상 학설의 대립,
- 실무에서의 적용 한계,
- 그리고 관련 판례의 태도를 통해
이 논점이 가지는 현실적 의미를 꼼꼼히 정리해보려 한다.
2. 위법수집증거와 파생증거, 둘의 연결고리
위법수집증거란 수사기관이 법률이 정한 절차를 위반하여 수집한 증거를 말하며,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에 따라 그 증거는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없다.
그런데 수사기관은 위법한 증거로부터 출발해
새로운 단서를 얻거나, 새로운 증거를 추가 확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불법적인 도청을 통해 피의자의 이메일을 확인했고,
그 이메일에서 ‘거래 장소’가 드러나 해당 장소를 수색해 현금을 발견했다면,
이 현금은 ‘직접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아니지만
위법한 증거의 결과물, 즉 파생증거로 볼 수 있다.
이때, 위법한 증거로 인해 생긴 2차적 증거물도 배제되어야 하는가가 문제된다.
이는 단순한 법리 논쟁을 넘어서
실체적 진실과 절차적 정의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둘 것인가라는
형사소송법의 근본 가치 충돌로 이어진다.
3. 파생증거에 대한 학설 대립 – 어디까지 배제할 것인가?
한국 법학계와 실무에서는 파생증거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를 두고
다양한 학설이 대립하고 있다.
대표적인 세 가지 입장을 살펴보자.
① 절대적 배제설
– 위법한 수단으로 얻은 결과물은 그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파생된 증거 또한 모두 배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확립한
‘fruit of the poisonous tree’ 원칙과 가장 유사한 견해다.
② 상당인과관계설(상당인과관계 인정 시 배제)
– 위법한 행위와 파생증거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을 경우에만 배제하고,
만약 인과관계가 희박하거나 끊어진 경우에는 증거능력을 인정한다는 입장이다.
한국 대법원이 사실상 채택한 견해로 보인다.
③ 독립적 발견설(예외 이론)
– 파생증거라 하더라도,
수사기관이 그것을 독립적으로, 합법적인 수단으로도 발견할 수 있었을 경우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불가피성 이론과도 연결된다.
이처럼 파생증거의 문제는
단순히 ‘있다 vs 없다’가 아니라,
인과관계, 합법적 가능성, 수사 의도 등 복합적 요소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학설 간 이견이 팽팽하다.
4. 실무상 적용 한계와 판례의 입장
실제 형사소송에서 위법수집증거의 파생 여부를 다투는 사례는 점점 늘고 있으며,
대법원은 기본적으로 상당인과관계설 + 예외 인정 가능성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있다.
예시 1)
대법원 2007도10123 판결에서는
경찰이 영장 없이 휴대폰을 압수하여 확보한 문자메시지 내용을 바탕으로
추가 범죄를 밝혀낸 사건에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부터 파생된 자료라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이 그것을 독립적 경로로 확보할 수 있었음을 입증한다면
증거능력을 예외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예시 2)
반면, 서울중앙지법 2019고합839 판결에서는
불법감청을 통해 수집한 자료로 피해자의 자백을 유도하고,
자백을 바탕으로 특정 장소를 수색하여 범죄물품을 확보한 사건에 대해
“초기 수사 전체가 위법한 수단에 기초한 만큼
모든 파생증거도 직접 연결된 위법성의 범위 내에 있다”고 보아
증거능력을 부정하였다.
이러한 판례의 경향은
- 인과관계가 직접적이고 명백할 경우 → 배제
- 간접적이거나 다른 합법 수단이 병행된 경우 → 예외 인정 가능
이라는 틀 안에서 판단되고 있다.
5. 결론 – 진실을 위한 증거, 그러나 그 진실도 정당해야 한다
형사소송에서 증거는 단순히 유죄를 입증하는 수단이 아니라,
어떻게 얻어졌는지도 동일하게 중요하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수집한 증거가
또 다른 증거로 이어진다고 해서
그 위법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파생증거를 배제한다면,
형사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이 불가능해지는 모순도 존재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 수사기관이 증거 수집의 적법 절차를 준수하는 것,
- 법원이 위법성과 인과관계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
- 피고인 측은 위법한 수단의 확장성을 문제 삼아
파생증거까지 배제 주장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정의는 목적이 아니라, 방법 속에 존재한다.
파생증거의 문제는 바로 그 방법이
과연 정당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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