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개요
2024년 말, 서울의 한 지하철에서 발생한 경범죄 사건.
한 남성이 상대방의 어깨에 몸을 부딪혔다며 폭행 혐의로 고소당했다.
다툼은 사소했지만, 피고소인은 공무원 시험을 앞두고 있어
“전과” 여부가 치명적일 수 있었다.
사건은 곧바로 반의사불벌죄로 분류됐다.
문제는 고소인과의 연락이 두절됐다는 점이다.
처벌불원의사를 받아야 사건이 종결될 수 있는데,
피해자는 전화도 받지 않고,
주소지에서도 전출된 상태였다.
검찰은 곤혹스러웠다.
과연 이 사건,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법적 쟁점: 처벌불원의사 미확인 상태에서의 기소 여부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가 있으면
형사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말한다.
폭행, 협박, 명예훼손, 모욕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처벌하지 않기를 원한다’는 말이
적극적으로 확인되지 않으면
검찰은 처벌 의사가 있다고 간주하고
기소 절차를 밟게 된다는 점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이나 대법원 판례는
“피해자가 명확하게 처벌불원의사를 밝혀야만 그 효력이 발생한다”고 본다.
즉, 피해자가 ‘처벌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문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면
사건을 ‘종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소’ 쪽으로 기울게 된다.
현장 실무는 복잡하고 까다롭다
이론은 단순하지만,
실제 수사 현장에서는 피해자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화번호가 바뀌거나, 고소장을 접수한 뒤 출국하거나,
사건을 접고 싶어도 공식적으로 그 의사를 밝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검사는 이럴 경우
사건을 장기 미제 상태로 둘 수 없기 때문에
소극적 처벌불원 추정은 허용되지 않고,
결국 기소 결정으로 가게 된다.
그 결과, 단순 사과로 끝낼 수 있는 사안이
기소 → 재판 → 벌금 → 전과기록
이라는 불필요한 사법 절차로 이어지는 일이 발생한다.
이대로 괜찮은가? 제도의 허점과 인권의 경계
이 구조는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으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 책임을 피고인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피해자는 사라지고,
검사는 "처벌불원의사 없음"이라는 전제로 기소하고,
피고인은 법정에 서게 된다.
이때 피고인의 입장은 허무하다.
“사건을 끝내고 싶은데, 상대가 연락되지 않아서 벌을 받는다”는 건
사법 시스템이 지닌 비인간적인 단면이다.
한편, 일부 검사들은 형사조정위원회를 거쳐
‘잠정 종결’ 상태로 처리하거나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하는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판례나 내부 규정상 ‘관행’일 뿐 명문화된 기준은 없다.
해결책은 있는가: 처벌불원의사에 대한 추정 인정제 도입
독일과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피해자의 의사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
상황과 정황을 바탕으로 ‘사실상 처벌불원’으로 판단하는 시스템이 일부 존재한다.
우리나라도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첫째, 일정 기간 동안 피해자에게 연락이 닿지 않을 경우
검사가 기소 유예 또는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할 수 있는 규정 신설
둘째, 최초 고소 시에 ‘향후 처벌 의사 없음’ 또는
‘합의 가능성 있음’ 여부를 체크하는 고소장 양식 도입
셋째, 피해자에게 통지했음에도 회신이 없는 경우
‘묵시적 처벌불원의사’로 간주할 수 있는 절차적 기준 마련
이런 변화가 없다면,
반의사불벌죄는 이름만 ‘반의사’일 뿐,
현실에서는 무조건 처벌로 향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결론
사소한 다툼, 가벼운 폭언, 피로 누적된 감정들.
이 모든 것이 형사사건이 되는 시대.
반의사불벌죄는 그런 일상 속 실수를
용서로 끝낼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가 사라질수록 피고인은 더 불리해진다.
사법 절차는 정의의 도구지만,
그 속에서 잊혀진 사람들의 감정은
제도에 깔려 지나간다.
지금 필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상황을 이해하는 ‘유연한 법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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