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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법

피의자의 묵비권 행사와 진술거부권의 오해와 진실

1. 서론 – “말하지 않겠습니다”는 죄인가, 권리인가

수사기관의 조사실에서 흔히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형사 또는 검사가 피의자에게 질문을 던지면, 피의자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또는 “진술을 거부하겠습니다”라고 답한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왜 말을 안 하지? 뭔가 수상하네’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우리 사회가 묵비권과 진술거부권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묵비권과 진술거부권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피의자의 권리다.
피의자가 자신의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해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권리 행사이며, 그 자체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권리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 때로는 오히려 수사기관이나 사회적 편견에 의해 ‘죄를 인정한 것’처럼 왜곡되기도 한다.

이번 글에서는 묵비권과 진술거부권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 권리들이 실제 수사와 재판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으며,
또 이를 둘러싼 잘못된 오해와 그에 대한 정확한 진실을 판례와 함께 정리해보겠다.

 

피의자의 묵비권 행사와 진술거부권의 오해와 진실

2. 묵비권과 진술거부권의 법적 의미와 차이

묵비권과 진술거부권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명시적으로 보장하는 피의자의 권리다.
그러나 둘은 완전히 동일한 개념은 아니며, 약간의 범위 차이가 존재한다.

✅ 헌법 제12조 제2항

“모든 국민은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

“피의자에게는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음을 고지해야 하며,
진술을 거부하더라도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

즉, 진술거부권은
▶ 수사기관이나 법원 등 공적 기관 앞에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를 말하며,
▶ 묵비권은 그중에서도 질문에 대해 침묵할 수 있는 권리로 이해된다.

실무적으로는 두 개념을 거의 동일하게 사용하지만,
▶ 진술거부권은 수사·재판 전체를 통틀어 보장되는 권리이고,
▶ 묵비권은 질문 하나하나에 대해 침묵할 수 있는 ‘세부 권리’로 간주된다.

이러한 권리는 자백 강요, 강압 수사, 허위 자백 방지를 위한 장치이며,
민주국가의 형사절차에서 절대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원칙이다.


3. 피의자가 묵비권을 행사할 때 생기는 오해들

묵비권을 행사하면 많은 사람들이 ‘피의자가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갖는다.
하지만 이것은 헌법의 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잘못된 시각이다.

❌ 오해 1: “묵비권을 쓰는 건 유죄라는 뜻이다”

→ ❗ 아니다.
묵비권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정당한 수단이며,
법적으로 피의자의 침묵을 유죄의 간접적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 오해 2: “조사에 비협조적이면 나중에 재판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 ❗ 그렇지 않다.
형사소송법은 명확하게
▶ “진술거부로 인해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 어떤 법원도 ‘말을 안 했다는 이유’만으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 오해 3: “경찰 앞에서 말 안 하면 검사가 더 화낼 것이다”

→ ❗ 수사기관은 감정으로 수사하지 않는다. (그래야 한다)
진술 여부는 피의자의 선택이며, 오히려 충분한 법적 조언 없이 성급하게 진술하는 것이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이처럼 피의자의 침묵은 혐의 인정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전략이며 권리 행사다.


4. 판례를 통해 본 묵비권과 진술거부권의 실효성

법원은 진술거부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 피의자가 진술을 거부하더라도 이는 자백 거부의 권리 행사일 뿐이며,
▶ 수사기관은 이를 이유로 강압 수사를 시도하거나 유죄를 추정할 수 없다.

📌 대법원 2016도7096 판결

“피의자가 경찰 조사에서 일체의 진술을 거부했지만,
이는 헌법상 권리 행사이며 그 자체만으로 불이익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 피의자의 침묵은 무죄추정 원칙 하에서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미

📌 서울중앙지법 2021고합145 판결

“피고인이 1, 2차 조사에서 모두 묵비권을 행사했지만,
그 후 변호인 조력 하에 작성된 자술서와 증거를 통해 방어권을 행사했다.
→ 묵비권 행사 자체는 재판상 불이익으로 해석될 수 없으며,
오히려 정당한 법률조력을 기다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사법부는 묵비권과 진술거부권의 행사를 피의자의 법적 권리로 존중하고 있으며,
그 침묵이 곧 유죄로 연결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5. 결론 – 침묵은 범죄가 아니다. 그것은 권리다.

형사소송에서 진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묵비권과 진술거부권은 피의자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이며,
그 행사 여부에 따라 유·무죄가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피의자는 진술을 하기 전
▶ 수사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 변호인의 조언을 구하고,
▶ 필요한 경우에는 침묵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묵비권을 고의적인 방해나 방어 전략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며,
그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묵비권? 그거 범죄자들이 쓰는 거 아니야?”라는
편견을 벗어던지고,
누구나 언제든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회에서,
침묵조차 존중받아야 하는 법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