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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법

형사재판에서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만으로 유죄 인정이 가능한가

1. 서론 – 말은 힘이 있다, 그러나 말만으로 판단해도 될까?

형사재판은 진실을 찾기 위한 싸움이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 중 하나는 바로 ‘진술’이다.
그 중에서도 피해자의 진술은 사건의 핵심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곤 한다.
특히 성범죄,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 물적 증거 확보가 어려운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피해자가 일관되게 진술한다면, 그 말만으로 피고인을 유죄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이는 단순히 하나의 판단 기준이 아니라,
피고인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아주 무거운 법적 논점이다.

이번 글에서는 형사재판에서 피해자의 진술이 유죄 증거로 채택되는 기준,
‘일관된 진술’이 가지는 증거력의 실체,
그리고 그 신빙성 판단에 대한 판례와 실무상 한계까지 구체적으로 분석해보겠다.


2.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일 때 법이 보는 기준

우리 형사소송법은 기본적으로 자백 중심주의를 지양하고, 증거 중심주의를 지향한다.
즉, 피고인의 유죄 여부는 다양한 증거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해야 하며,
단 하나의 증거나 진술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사건의 경우
▶ 범행이 은밀하게 이루어졌고
▶ 물리적 증거가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때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상 수사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법원은 이러한 구조적 특수성을 고려하면서도,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명확히 해왔다.

그 핵심은 바로 **‘일관성, 구체성, 신빙성’**이다.


3. 법원이 피해자의 진술을 판단하는 요소

피해자의 진술이 아무리 일관되더라도,
그 자체로 유죄의 증거로 쓰이기 위해서는 단순 반복이 아닌, 실제로 신뢰할 만한 내용인지에 대한 법원의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다음은 실제 판례와 수사실무에서 기준으로 삼는 주요 요소다.

일관성

  • 사건 발생 초기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 진술 내용이 앞뒤로 모순되지 않고 유지되는가
  • 조사기관, 경찰, 검사, 법정에서 진술이 변하지 않았는가

구체성

  • 진술이 구체적인 정황, 시간, 장소, 대화, 행동을 포함하는가
  • 피상적인 설명이 아닌 당시 상황을 떠올릴 수 있는 세부 묘사가 있는가

객관적 정황과의 부합성

  • 진술 내용이 CCTV, 통신기록, 증인 진술 등과 어긋나지 않는가

피해자의 태도

  • 진술 과정에서 진지하고 일관된 태도를 유지했는가
  • 수사기관의 유도 없이 자발적으로 서술했는가

2차 진술 과정에서의 신빙성 변화 여부

  • 1차 진술 이후 시간이 지나도 내용이 유지되었는가
  • 반복 과정에서 오히려 진술이 더 구체화되었는가

이러한 판단 요소들이 충분히 충족될 때에 한해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유죄 인정이 가능하다는 것이 최근 법원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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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판례를 통해 본 진술 증거의 한계와 오해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한 사례도 있고,
반대로 진술의 일관성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판결도 많다.
이 두 가지는 형사소송 실무에서 매우 중요한 대조 사례를 보여준다.

대법원 2014도14555 판결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 외에 별다른 물적 증거가 없었지만,
피해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며, 구체적이고 감정적 왜곡이 없는 진술을 유지하였고,
피고인의 주장과도 충돌되지 않아 유죄를 인정하였다.

서울중앙지법 2020고합912 판결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이
▶ 조사 초반과 법정 진술에서 세부 내용이 상이하고,
▶ 일부 시간적 흐름이 객관적 증거와 맞지 않아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 무죄 선고.

즉, 단순히 피해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같았다”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일관된 진술이 객관적 정황과도 부합해야 하며,
피해자의 진술 능력, 동기, 감정 상태 등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5. 결론 –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 진실은 검증되어야 한다

진술은 형사재판에서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진술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기억과 감정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그 신빙성을 따지는 과정 없이는 결코 절대적 증거가 될 수 없다.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은 분명히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일관성이 진실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외부적 동기나 감정에서 만들어진 ‘외형적인 일관성’인지는 반드시 따져야 한다.

따라서 수사기관은
▶ 피해자의 진술을 무조건 믿고 기소하는 것이 아니라,
▶ 그 진술의 신뢰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검토하고 보강해야 한다.

법원은
▶ 진술만으로 유죄 판단을 내리기보다,
▶ 그 진술이 ‘검증 가능한 진실’인지를 확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진술은 진실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진실이 누군가의 운명을 좌우한다면,
말도 반드시 증명되어야 한다.